to.첼
[졸리다..민호 커피마시러 가지 않을래?]
점심을 먹고 난 후, 한창 졸린 시간에 제정신을 못차리던 와중 문자가 한 통 왔다. 내용을 확인하고선 생각하지도 못한 귀여운 문자에 토마스의 눈이 확 떠졌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바로 몇달 전 들어온 신입사원 뉴트였다.
슬쩍 파티션 너머로 사무실을 둘러보니 모두가 딴짓하느라 여념이 없거나 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바짝 군기가 들어가 곧게 앉아있는 그 신입사원의 모습이 들어왔다. 졸려서 문자도 잘못보낸 주제에 업무 중에 자신은 핸드폰따위 보지 않았다는걸 어필하기 위해 저리도 꼿꼿하게 앉아있는 것일터였다.
그 모습이 조금 귀엽게도 느껴진 토마스는 이제 이 문자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 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토마스는 이 위키드 회사 1인사과의 아웃사이더였다.
나름 올바른 일을 한다고 믿어오며 지내왔던 날들은 갤리부장의 부당해고로 부숴져버렸다.
싸가지는 없었지만 부하들을 많이 챙겨주고, 보기와는 다르게 좋은 사람이었던 부장을 토마스는 나름 롤모델로 삼고있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올바름은 다른 이들에겐 아니꼬움의 대상이 될 뿐 이었고, 회사 내 표적이 되기 쉬었다. 결국 그는 회사를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몇년 하며 숨죽이는 것만 배운 토마스는 그와 같이 부당함에 맞서싸우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름대로 반항의 의미로 혼자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너희같이 더럽고 비열한 족속들과는 다르다.'
사실 아무런 의미없는. 회사 내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못끼치고 끝나고 말 그런 반항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치여사느라 바빴기에 또 왜 저러나, 하는 반응밖에 끌어내지 못한 반항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에 낙담한 토마스에게 벽에 걸린 [위키드는 선하다]라는 회사 표어는 토마스를 겨냥해, 선한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너가 나쁜것이다-라고 말하는것만 같았다.
그런데 한번 무리에서 떨어져나가니 다시 무리로 돌아가기란 어려웠다. 또한 토마스의 성격상 선을 그었던 이들과 잘지내기란 무리였다.
그러나 일단 먹고는 살아야하니 회사는 계속 다녀야 했다.
그렇게 토마스는 아웃사이더로 지내는 편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날도 여느때와 다름없는 나날이었다. 혼자 밥을 먹는게 슬슬 익숙해진 토마스는 직원식당 한켠에 앉아 오후에 할 업무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여기 앉아도 되는거죠, 차장님?"
순식간에 정리해둔 업무 내용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또랑또랑한 목소리는 위키드에서 처음 듣는터라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했다. 역시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하얀 피부에 어울리는 금색 머리칼. 소년처럼 보이는 얼굴은 고등학생처럼 보여 학교에서 회사 견학을 와봤어요. 라고 말해도 믿을만큼 앳되었다.
순간 멍해진 머리를 털고 넌 누구냐는 식으로 쳐다보았다.
"아, 전 이번에 제1 인사과에 배정받은 신입인 뉴트라고 합니다. 잘부탁합니다."
"아..어, 그래. 잘부탁한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밥을 다시 먹으려고 하는 순간, 여기 저기서 웅성거림이 들리고 시선이 꽂히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토마스 자신도 '이 아이는 왜 나랑 밥을 먹으려 하는가?'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 이런 시선들과 소란스러움 정도야 토마스는 반년전부터 익숙해졌다지만 이 신입은...들어온지 몇달도 안되었을터였다. 당연히 괜찮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냥 일어나야겠군.'
"어, 차장님? 다 드신거에요?"
대체 무슨 깡으로 자신과 먹으려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었던터라 토마스는 그 물음에 작게 끄덕이고 직원식당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첫만남이었다.
그 뒤로, 토마스는 기본적으로 회사 사람들에게 관심가지지 말자라는 모토를 깨고 과 내에서 뉴트의 행동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뉴트는 신입사원치고는 여러가지로 대단하고 유능했다. 보고서 작성실력은 뛰어났고 잡 일 처리도 깔끔하게 해냈다.
또한 사교성이 좋기도 하고, 얼굴도 꽤 반반하게 생겨서인지 인사과 내 인기 아이돌 취급을 받았다.
'아웃사이더인 나랑은 정말 다르군.'
그러나 밥만큼은 과 내 무리에서 떨어져 토마스와 같이 먹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모두들 그에 대해 협박받았냐, 혹은 잘보이려고 그러냐 식의 말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뉴트는 특유의 호감을 생기게 만드는 미소로 잘 해결했는지 며칠 뒤에는 그런 말들이 언제 나왔냐는 듯 잠잠해졌다.
같이 먹는 순간의 웅성거림과 놀라운 시선들마저 이제는 또 저 둘이 먹는구나, 하는 시선이 되었다. 그리고 같이 밥을 먹기 시작하고 두달정도가 지나자 이제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되었는데 퇴근길마저 방향이 같았다.
그러한 연유로 퇴근하고 차를 타고 집에 가려다 마주치게 경우가 꽤 많았다. 밖에 나와선 굳이 말을 걸지 않아도 되는데 그걸 또 굳이 말을 거는 뉴트였다. 그 덕에 집 가는 길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이번 사업은 어떻게 될 것 같냐. 이번에 같이 들어왔던 신입 동기는 이렇다 저렇다. 등등 회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주로 했다.
그러다 곧 회사 내에선 할 수 없는 회사에 들어오기 전 겪었던 여러 사적인 이야기들도 오고갔다.
그러다 보니 싸고 맛있는 술집을 둘이 같이 가게 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점점 친해지기 시작했고, 토마스는 뉴트에게 약간의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도 저런 꼿꼿한 자세여서야, 문자를 잘못보낸줄도 모르고 있겠군.'
슬쩍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핸드폰 자판을 치기 시작했다.
[이봐 신입사원. 지금 커피마시러 갈까?]
문자가 전송완료 되었다. 울리는 진동에 화색을 한 뉴트는 이제서야 답장온 상대가 누구인지, 자신이 문자를 보냈던 상대가 누구였는지 알아챈 기색이었다. 정말 그답지 않게 진심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항상 여유있고 유능하고 바른 신입사원의 모습을 유지하던 뉴트가 저렇게 허둥지둥 대는 모습은 좀 색다르다고 느끼고 있을 때였다. 다시 토마스의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뉴트의 답장인가?
[헉 아니 차장님. 죄송합니다. 아뇨 졸려서 민호한테 보낸다는걸 실수로 그만. 죄송합니다.]
[잊어주세요]
[앗 그치만 차장님이랑 커피는 마시고 싶어요.감사합니다.]
아니, 정말 해치고 싶을 정도로 귀엽군. 토마스에게 있어서 같은 남자에게 이런 기분이 든 건 뉴트가 처음이었다.
약간의 호감같은게 아니었다. 이건 완벽하게 콩깍지가 씌인거였다.
[그럼 오늘 일찍 퇴근해서 카페나 갈까? 내가 커피가 정말 맛있는 곳 아는데.]
[앗, 네. 차장님. 금방 일 끝내겠습니다.]
이런 간단한 대답 문자마저 귀엽다니. 나도 참 중증이군.
토마스는 터지려는 웃음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급히 파티션 안쪽으로 허리를 굽혔다.
[그래, 빨리 끝내라고.]
[알겠습니다!]
문자를 읽자마자 괜히 자동재생되는 뉴트의 맑은 목소리에 토마스는 더이상 미소를 숨기지도 않은 채 환히 웃으며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귀엽다니깐.
ㅌㄴ회사썰(리퀘글)
2016. 7. 18. 2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