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Matryoshka - Sacred play secret place 을 들으면서 썼습니다.)
마지막 이야기
끝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시시했고, 그저 그런 이야기 중 하나였다.
정말 한순간의 방심이었다. 그는 창살에 부서지는 저녁노을에 눈이 멀 것만 같아 고개를 돌리고는 벽면을 바라보았다.
The golden Light of the setting sun
Let me be a hypocrite again
-
오만이었다.
왕국 군은 너무나도 쉽게 그가 활동했던 민중의 벗의 꼬리를 잡아버렸고 전체적으로 볼 땐 별거 아닌 피해였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큰일로 번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학원을 그냥저냥 평범하게 졸업하고, 동생과 누나, 조부모님께서 기다리는 고향에 내려가서는 평범하게 살고자 했다. 그날, 그 12월에 있었던 기나긴 밤은 그에게 ‘평범한 너에겐 이런 큰 활동은 무리란다.’라고 말해주었고, 조용히 그날로 모든 활동을 그만두었다.
그래. 친구들을, 선배들을, 후배들을 놓칠 수도 있었던 그날 이후로 민중의 벗 활동을 그만두었다. 사실 진즉 이렇게 해야 했다. 그도 얼핏 깨닫고 있었다. 공화 활동을 한다고 그렇게 자신을 버려두고 간 부모라는 작자들을, 아직 살아있을 거라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거짓 희망에, 그렇게 찾아다녔다. 그들이 활동한 민중의 벗에 가입을 하고, 공화 활동을 하며. 말 그대로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만두고 나서 조용히 살면 좋았을 것을.
언제였더라? 그가 첫 임무를 맡았을 때였나. 그때 알게 된 한 은인이 그를 찾아왔다.
자네가 조용히 살고 싶어하는 것은 알아. 이렇게–그는 루드가 직접 캔 포슬한 찐 감자를 들어보이고는 말을 이었다-감자나 캐면서 말이야. 하지만, 이번 딱 한번만 도와주면 안 되겠나?
거절할 수 있을까? 아니, 답은 정해져 있었다.
모든 것이 귀찮고, 놓아버리고 싶고, 동생들이 제일 중요한 그였지만 차마 놓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은인이었다. 눈 딱 감고 내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는 부탁이었다.
좋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시야 한 쪽에 들어온 동생들의 미소가, 저 멀리 들려오는 누나의 투정 어린 목소리가, 단 것을 좋아하는 루드를 위해 항상 곱게 사탕을 만들어 두는 조부모님들의 온기가 못내 걸렸지만,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 부모님의 마지막 인사가 그렇게 루드의 등을 떠밀었다.
그래. 괜찮았다. 이제 민중의 벗과 관련한 서류를 불태워 버리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너무 빨리 눈치를 채버린 왕국 군은 어느새 그들이 있는 건물 코앞까지 왔고 단순히 민중의 벗 당원들을 서포트 한다는 임무를 받은 루드는 모두에게 괜찮다고, 먼저 가라며 당원들을 보냈다.
당연한 일이었다. 민중의 벗을 탈퇴해 민중의 벗에 아무런 정보도 없는 그보다, 현재 소속되어 있는 그들의 안전 보장이-그들의 가족까지 연루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훨씬 중요했다. 그러했기에 이미 모든 것을 태우고 나온, 그곳에 아무런 정보도 없을 루드가 그 서포트 임무를 맡은 것이었다. 그를 계속 쳐다보며 주저하는 당원들에게 얼른 나가라고 보챘고, 마지막 한 명까지 보낸 후, 곧 떨리는 손으로 열리지 않는 서랍을 억지로 비틀어 열어 당원들의 정보가 담긴 서류를 들고 건물 뒤편, 숲으로 뛰어갔다.
하, 시발. 이럴 줄 알았으면 마법이나 제대로 배워둘걸. 불은 또 왜 이렇게 안 붙어?
정말이지, 오랜만에 하는 임무여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직감적으로 붙잡힐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 걸까. 계속 밀려들어 오는 잡생각에, 불이 잘 붙지 않아 제대로 타지 않는 서류에 그는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익숙하지 않은 숲길을 계속, 달렸다.
됐다. 겨우 붙은 불은 곧 서류 한 뭉텅이를 집어삼켰고 곧 짐과 같았던 그것은 한줌의 재로만 여기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더 갈 곳은 없다! 투항해라!
조용히 두 손을 들어 보였다. 뒤는 절벽이었으니.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그는 눈을 감았다. 이봐요, 아저씨. 당신 부탁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거니 내 가족들을 잘 부탁합니다. 닿지 않을 마지막 억지를 속으로 되뇌고는 그렇게 붙잡혔다.
이젠 생각도 나지 않는 부모님의 마지막 미소가 어둠 속에서 보인 것만 같았다.
I will be gone before long
I know I’m wrong
No mattter how far I go, they find me out
-
나와라.
정말이지, 정을 붙이고 싶어도 붙일 수 없는 목소리구먼. 생각하고는 웃었다. 이런 상황까지 이렇게 실없는 생각을 할 수 있다니. 나도 철 좀 들은 건가. 아니면, …아무렴 어떨까.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목에 걸리는 밧줄은 이상하게도 거칠어, 제대로 마감처리를 하지 않은 밧줄인 걸까. 아주 작게 삐쭉 튀어나온 가시들이 피부에 박히는 것만 같았다.
너무하네. 마지막 가는 길인데 좀 고운 비단으로 만든 밧줄을 목에 걸어주지.
이젠 아는 것을 모두 말하라며 얻어맞은 몸도, 더는 아프지 않았다. 계속된 고문에 생리적으로 나온 눈물도 이젠 나오지 않았다.
이제 끝이었다. 저 옆에 서 있는 저 사람이 마지막으로 레버를 당기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그 순간, 언젠가 들었던 피아노 소리가, 웃음소리가, 이야기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언젠가 보았던 타오르는 모닥불이, 눈 내리는 풍경이, 휴게실의 모습이 저 너머로 스쳐 지나갔다.
I feel so good
그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찰나였다.
덜컹, 하는 소리에 몸이 바닥으로 꺼지는 느낌이 들었고 한번 추락한 세상에 몸이 서서히 굳어갔다. 그리고 곧, 추락을 억지로 막고 있는 그 거친 밧줄은 점점 숨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시발, 적어도 추하게 죽고 싶지 않아서 총살을 원한 건데. …아무래도 좋을까.
but I’m worn out
그래. 살고 싶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살려는 마음은 이미 접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생리적인 반응은 목뼈가 부러졌다 하더라도 그가 몸을 꿈틀거리게 하였고,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사형대 위가 루드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순간이었다.
저 멀리서, 항상 그리워했던 두 사람이 양 팔을 벌리고는 루드에게 이리오라며 웃어 보였다.
어느새 어린아이가 된 그는 그들에게,
빛을 향해.
we’ll be all right
Then, I give all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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